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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나라의5대적멸보궁

우리나라의 5대적멸보궁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한국의 사찰 중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대표적인 다섯 군데의 당우(堂宇)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으로 석가모니불이 미혹(迷惑)의 세계를 벗어나 항상 적멸의 낙을 누리는 곳이다.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예불을 올릴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설치해 둔다.

부처의 존상이나 후불탱화도 없고 다만 법당 바깥에 사리를 모신 탑이나 계단(戒壇)을 설치.

 

적멸보궁(寂滅寶宮)있는곳

1.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적멸보궁

2.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上院寺)의 적멸보궁

3. 강원도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의 적멸보궁

4.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의 적멸보궁

5.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1.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通度寺)

646년(선덕여왕 15) 자장율사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창건한 사찰.
통도사에 관한 역사 기록을 통하여 통도사의 사격(寺格)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으며,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가 계단(戒壇)을 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 득도시킴으로써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 도량(根本道場)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佛寶) 사찰로서 우리나라 사찰을 대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람 배치와 사찰 조경 측면에서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통도사는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 창건함으로써 창건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찰이 아니었고, 후에 금강계단 이라고 불린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 뒤 고려 전기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전기 선종 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당시의 중요한 석조 조형으로는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 배례석(拜禮石), 봉발대(奉鉢臺)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속하는 유물이고 그 밖에 현존하는 목조 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되었다.
통도사의 가람 배치는 신라 이래의 전통 법식에서 벗어나 있는데,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늘어서 있다. 서쪽에서부터 가람의 중심이 되는 상로전(上爐殿)과 중로전(中爐殿), 하로전(下爐殿)으로 이어진다. 또 그 서쪽 끝에 보광선원(普光禪院) 이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서부터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의 세 문을 통과하면 금강계단에 이르게 된다. 금강계단 앞의 목조 건물인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인조 23) 우운(友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상부의 기본 형태는 정(丁)자형의 특이한 구조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 정면격인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한편 금강계단 불사리탑(佛舍利塔)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를 세 곳에 나누어 황룡사탑, 태화사탑, 그리고 통도사 계단에 봉안하였다고 하는 불사리 계단이다. 통도사의 특징은 불사리 계단에 있으며, 또 이로 인하여 불보 사찰의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부처의 신골(身骨)인 사리를 봉안하였기 때문에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고, 내부에는 불상 대신 거대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이 조각되어 있다.

상로전의 법당에는 금강계단과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應眞殿), 명부전(冥府殿), 삼성각(三聖閣), 산신각, 일로향각(一爐香閣) 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로 지정된 통도사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 건물로서, 창건한 시기는 1677년(숙종 3)이며, 내부에는 석가삼존과 그 주위에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봉안하였다. 후벽의 탱화를 위시하여 내외 벽화는 주목되는 불화들이다. 산내 암자로는 극락암, 비로암, 자장암, 백운암, 축서암, 취운암, 수도암, 사명암, 옥련암, 보타암, 백련암, 안양암, 서운암 등이 있다.

적멸보궁 금강계단(金剛戒壇)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을 받들어 기도하고 예불을 올릴 수 있도록 계단 앞쪽에 세워진 고색 창연한 전각의 전면에는 "金剛戒壇"이란 편액이 달려있고 동쪽 측면에 "大雄殿", 서쪽 측면에는 "寂滅寶宮"이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다.

 

통도사입구 영취산문(靈鷲山門)  이곳에서 입장료와주차비(\5,000원)내는곳

 

 

 

 

 

 

 

 

 

 

 

 

금강계단(적멸보궁) 있는곳  

 

 

금강계단뒤 정골사리가모셔진탑 

 

 

 

2.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上院寺)의 적멸보궁

자장율사가 오대산을 개산한 이후로, 오대산에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하여 불교 성지로 추앙받았으나, 이 사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아, 신비로운 전설처럼 전해진다. 상원사는 이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호령 역할을 맡는 절이며, 이 상원사의 건립과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자면, 상원사는 선덕왕의 두 왕자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진여원이라 불렀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 그 이름을 빛내면 서 마침내 오류성중,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 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절을 짓고 난 후 두 왕자는 그 곳에서 수행을 했는데, 신문왕이 죽은 후 후계 문제로 다툼이 끊이질 않자, 오대산의 두 왕자를 찾아왔고 그 중 하나가 왕이 된 후 진여원을 상원사로 개명했다. 고려시대에 들어 상원사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국교가 불교이니만큼 불교 성지에 대한 중흥이 일어날 법도 한데,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삼국 시대를 전후로 소실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려 후기 이색의 오대상원사승당기라고하는 기행문에서 나옹스님의 제자로 알려진 영로암 스님이 재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상원사는 적어도 고려 말 이후의 것이다. 그 이후 조선 시대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인해 상원사는 자칫하면 소외된 절이 될 뻔 했으나. 세조와의 인연으로 다행히 그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현재 상원사는 월정사에 포함된 절이다.

 

오대산월정사, 상원사적멸보궁

 

상원사 적멸보궁 뒤에는 1m 높이의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서있다.

 

상원사입구

 

 

상원사로올라가는길~~

 

 

 

 

 

 

 

 

 

 

 

 

 

상원사에서적멸보궁으로가는길

 

 

중대사자암 적멸보궁가는중간에있는암자 ~~~

 

 

 

 

적멸보궁입구 안내표지판

 

 

 

 

 

 

 

3. 강원도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의 적멸보궁

 

해발 1244미터 위치

강원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1,708m) 소청봉 북서쪽에 있는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인 백담사의 말사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1,244m 지점에 자리잡고 있어자주찿기가쉬운곳은아니다.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사찰의 여느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이 중국 당(唐)나라에서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설악산 봉정암 석가사리탑

 

 

 

108배를드리는 스님~~~ 

 

 

 

석거사리탑주위 용아장성~~~ 

 

 

 

 

 

 

 

 

 

 

 

사리탑옆용아장성등로입구 

 

 

곰봉(곰을닮은바위) 

 

 

 

4.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獅子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하였다.
그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진신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사찰이름을 흥녕사(興寧寺)라 하였다. 신라 말에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도량으로 삼았다.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891년(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되었고, 944년(혜종 1) 중건하였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로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하였다. 1912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된 뒤 1930년에 중건하였으며, 1931년의 산사태에 옛 사지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대웅전·무설전(無說殿)·요사채 겸 공양실인 심우장(尋牛莊)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1939년에 중수하였으며,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있다. 이 적멸보궁 좌측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토굴이 있고 좌측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넣고 사자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石函)이 남아 있다.
적멸보궁 뒤에는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인 영월 법흥사 부도가 있다. 토굴은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흙으로 위를 덮었고, 봉토를 올리기 위하여 토굴 주변에 석축을 올렸다. 내부구조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 또는 보수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의 높이는 160㎝, 깊이 150㎝, 너비 190㎝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612호인 영월흥령사징효대사탑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징효국사부도(澄曉國師浮屠)와 패엽경(貝葉經)이 있다. 이 중에서 패엽경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인도에서 영라수(靈羅樹) 잎에 경전을 기록하였던 것으로, 앞뒤 가득하게 범어로 쓰여져 있는 희귀한 것으로, 본래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었는데, 공산 치하를 피하여 한 승려가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그 후 30여년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부산의 한 절의 주지가 신도로부터 얻어 법흥사에 봉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절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6호인 흥녕선원지가 남아 있으며, 진신사리와 함께 패엽경을 친견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신도들의 발길이 항상 끊이지 않고 있다

 

영월법흥사 적멸보궁 

 

 

 

법흥사입구일주문 

 

 

 

 

 

 

 

 

 

 

 

 

사자산법흥사적멸보궁뒤에있는~~~ 

 

 

 

 

 

 

 

 

 

 

 

 

 

 

법흥사앞 구봉대산 부처님니누워있는형상이라고함 

 

 

 

 

 

 

 

 

 

 

 

 

 

 

 

 

 

5.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太白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方袍)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또,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절 입구에는 일주문(一柱門)이 세워져 있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근년에 완공된 선불장(選佛場)이 있다.
오른쪽에는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중간 도량가에 종루가 있고, 선불장 옆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자장각(慈藏閣)·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이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점은 고목이 옛날 그대로 손상된 곳이 없다는 것인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정선정암사 수마노탑

 

정암사적멸보궁

 

 

 

 

 

 

 

 

 

정암사적멸보궁 

 

 

정암사수마노탑 

 

 

 

 

 

 

 

이로서 우리나라 5대적멸보궁있는곳과 주위의산  양산통도사적멸보궁 (영남알프스 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봉,능동산, 천황산, 재냑산등),평창상원사적멸보궁(오대산,두리봉),인제봉정암(설악산), 영월법흥사(사자산,백덕산,구봉대산),정선정암사(함백산,태백산, 금대봉,대덕산,백운산(마천봉), 장산, 선바위산,순경산,백두대간매봉산(천의봉)등 아름다운풍경과 역사가있는 사찰을 돌아보았다.

출처 : 풍 월 주 인 ( 風 月 主 人 )
글쓴이 : 설중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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