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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산행/서울

[북한산 비봉능선]알몸의 겨울산이 좋다 2024.12.14

대한민국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기온도 상당히 내려가 있다. 올 가을 들어 다리 컨디션이 별로였다가 드디어 발 뒤꿈치 아킬레스 부근이 아파온다. 한의원 침 시술을 여러 번 진행해도 별 차도가 없어 삼미시장 부근 연세튼튼 신경외과로 바꾸었다. 초음파로 확인하니 아킬레스 부근 석회석이 모여 있었다. 체외충격으로 깨어내는 치료가 약 1달간 진행되고 있다. 많이 좋아졌다. 지난주 소래산에 올랐고 이번주는 북한산으로 올라간다. 
 
오늘 여정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09:45) →중성문(10:32 2.8Km)→부황동암문(11:19 4.5Km)→나월봉(11:36 4.9Km)→나한봉(12:00 5.4Km)→문수봉(12:19 5.8Km)→승가봉(13:17 6.8Km)→사모바위(13:34 7.2Km)→관봉(13:50 7.9Km)→족두리봉(14:46 9.6Km)→대호아파트 날머리(15:15 10.6Km)

 
 
▶<09:45>붐비는 시간인데 추위에 한가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앞. 어르신도 거의 안 보이고 젊은이들도 몇 안된다. 광화문으로 그리고 여의도로 달려가는 날인가 보다. 12월 3일 밤 10시 30분 난데없이 대통령 비상계엄이 내려졌다. 거대 야당의 폭주와 부정선거를 척결한다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접수하고 의회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한밤중 시민들이 막아서고 국회 보좌진들이 행동하여 계엄군 진입을 지연시켜 다행히 3시간만에 국회가 계엄을 무효시키고 14일 대통령을 탄핵했다

 
 
▶나도 오늘 하산후 국회 탄핵 시간에 맞추어 여의도에 갈 것이다

 
 
▶여기는 수문이 있었던 곳. 조상님들은 외침에 대비해 북한산에 산성을 만들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는데 12월 3일 대통령은 10% 지지율에 내몰려 대통령직 수행이 어려울 정도가 되자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비상계엄을 내렸다. 자기와 반대로 생각하는 모든 개인과 조직을 처단한다고 했다.계속되는 후일담이 쏟아져 나온다. 부정선거란 극우들의 난동 유투브를 보고 여기에 깊이 빠져든 한나라 대통령의 정신병적인 광기의 결과였다

 
 
▶계획이 엉성했는지 실행 단계에서 동의하지 않는 실무자 특히 실행 병력들의 소극적 대응 등으로 3시간여 만에 국회에서 비상계엄이 무효화되고 6시간 만에 대통령이 해제를 발표한다. 이만하기 다행이다. 국가 안보 외교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얼어붙었다. 

 
 
▶ 새마을교를 건너 오른쪽 대남문 방향으로 올라간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새마을 운동이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박정희가 앞장서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일종의 계몽운동이자 실행 메뉴얼이었다. 유신헌법에 갖은 억압과 독재가 있었음은 70년대를 지나 대학생활을 하며 알게되었다.

 

▶ 11월 폭설에 북한산 소나무도 견디지 못했다. 유신헌법으로 장식된 그때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목표는 1980년이면 <수출 100억 불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다. 숨은 그림 찾기

 

▶ 대서문을 지나 산성 내 행궁으로 올라가는 중간의 중성문. 쉬면서 가는 길 챙기는 시간이다. 우리 국민들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 단풍이 이쁜 곳인데 고드름이 폈다. 날카로운 얼음은 겨울이 물러나면서 녹아내릴 것이다. 강압과 폭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갈림길에서 부황동 암문방향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운명은 선택이다. 인간은 언제나 선택을 강요당한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택했다. 자신의 무능과 왜곡된 정책으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결과다

 
 
▶부황사지로 올라간다. 북한산성 축조 시 동원된 승병들이 머물던 사찰이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움막집 법당만 빈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난한 시대에도 나라를 지키고자 전국 승려들까지 동원되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잔혹한 횡포에 국민들은 고통만을 받았다

 
 
▶거대한 법당 건물도 머리카락 없는 스님도 없는 절이다. 언젠가는 복원 공사로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노적봉 뒤로 북한산 총사령부가 수천만 년 자리를 지키고 있다. 70년대 중동 전쟁으로 유가 폭등이 있었다. 기름은 둘째치고 연탄 구하기도 힘들었다. 가정당 몇 장씩 배급제 판매로 나누어 썼다. 흡사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 판매 방식과 같았다. 같이 살아야 한다.

 
 
▶부황동 암문에 잠시 멈춘다. 대통령 덕분에 옛 일이 많이 떠오른다. 당시 파리 잡아 성냥갑에 담아 학교에서 점검을 받았고 전국 쥐잡기 날이 있어 그 사냥물의 수확 증거로 쥐꼬리까지 학교에 등장했다. 회충 검사한다고 변을 봉투에 담아와 제출하기도 했다.

 
 
▶ 낮은 성곽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여장이라고 한다. 엎드려 적의 동정을 살피고 총구나 화살로 조준하는 곳인 듯하다. 1975년 중학교 1학년 점심 먹고 첫 수업 시간은 기술이었다. 대나무 자로 뺨을 때렸던 키 큰 선생님이 오후 1시 수업이 시작되자 들어오셔서 한숨을 쉬면서 월남이 망했다고 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된 날이다. 우리도 공산화되면 지옥 같은 세상인데 어떻게 살아가나 다들 걱정하던 시기였다.

 
 
▶나월봉으로 가는 길도 잘 정비되어 안전하고 등산로 훼손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내 기억에 1977년 미국 대통령으로 민주당 카터가 취임한다. 민주당이 집권하여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실행하면 대한민국은 당장 북한괴뢰가 쳐들어와 망한다고 생각하는 정치꾼들이 많았고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머리맡에 라디오 들으며 이런 저런 소식을 전해주셨다.공산당 단어만 나와도 치를 떨던 시기였다.

 
 
▶금줄을 넘어 나월봉으로 올라왔다. 가지 말라는 곳은 가지 않는데 유독 여기는 늘 들어서게 된다. 매력이 있다는 얘기다. 중학교 때 스포츠 전문 신문이 발간되었다. 한 친구는 매일 스포츠 신문을 가져와 관심 있는 친구들과 같이 보기도 했다. 흑백이 칼라화되고 몇 장 안 되던 신문이 두꺼운 뭉치가 되었다. 지금도 스포츠 종이 신문을 발간하는지!

 
 
▶아찔한 길은 아주 짧다.

 
 
▶나월봉에서 내려서는 에스컬레이터 길. 제비가 날아갈 준비 자세로 서 있다. 

 
 
 
▶나한봉에는 아무도 없다. 1979년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소풍 가는 날. 아침 버스로 시내를 지나는데 부산 남포동 시청 앞에 돌멩이가 흩어져 있고 장갑차 몇 대가 길에 서 있었다. 메케한 냄새는 맡지 못했다. 이른바 부마항쟁 현장이었다. 10월 초였다.

 
 
▶의상능선에서는 어디나 조망 맛집이다. 나한봉에서 내려다 본 비봉 능선과 문수봉 방향. 설악산을 빼면 전국에 이 만한 산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청수동 암문에 올라서면 오르막은 거의 마무리된다. 잔설이 많이 남아 있다.

 
▶문수봉 정상목에 다가선다. 정상은 저 멀리 위험한 곳이라 탐방 불가 지역. 바라만 보아야 더 아름다운 것이 자연이다. 1979년 10월 26일 독재자 박정희는 가장 충성스러운 그의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일생을 마감한다. 본인도 그렇고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영원불멸의 박정희였다. 바야흐로 서울의 봄이 온 것이다. 

 
 
▶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 앉아 점심의 여유를 즐기고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내려서는 직벽으로 간다. 독재자는 갔는데 새로운 독재자가 나온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물러난 12월 12일 1212 사태로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한다.

 

▶북한산에서 가장 멋진 봉우리 중 하나인 문수봉. 이듬해 1980년 고등학교 3학년. 5월 독재에 항거한 광주 시민들이 피 흘리며 지키고자 한 것은 민주주의였다. 여름 방학 본고사 준비로 전교생 600여 명 중 약 150명이 강당에 모여 공부하고 있었다. 점심 먹고 오후 자리에 앉으니 감독 선생님이 본고사가 없어졌다고 했다. 신군부의 정책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신군부의 정당성을 부여코자 다양한 정책 및 행사가 등장한다. 여의도에서 국풍이란 노래 대회가 펼쳐지고 야간통금이 해제되고 컬러 TV 시대도 시작되었다. 1982년 프로야구도 출범한다. 개막전 시구는 전두환 차지였다.MBC청룡과 삼성라이온즈의 개막전의 하이라이트는 MBC 청룡 이종도의 만루포

 
 
▶문수봉 부근 바위들. 오후 시간이라 역광이다. 1982년 서울 캠퍼스는 최루탄과  돌이 날아다녔다. 사복 전경들이 심지어 강의실까지 들어온다. 독재에 항거하는  집회는 매일 열리고 투신하거나 분신하는 학생도 계속 이어진다

 
 

 
 
▶직벽으로 내려선다. 길이 없어 보여도 가다 보면 길이 나온다.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대학 시절 3년을 보내고 아버지가 후두암으로 병원에 다니시고 1년이 안되어 돌아가셨다.1985년 나는 군대로 간다. 경찰병력이 되어 1987년을 맞았다. 계속 행정반에 근무했고 87년에는 선임이라 취사장 보직으로 직접 진압에는 가보지 못했다. 88년 복학하고 9~10월 매주 대학로 집회에 나갔다. 88년 이후 임금은 급속히 올라가고 수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다.

 
 

 
▶파이프 난간을 붙잡고 절벽을 내려와 청수동암문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힘들면 같이 걸으면 된다. 군인들 시대는 끝나가며 적성국가 소련및 중국과 수교하고 김영삼과 노태우가 삼당합당하며 군인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심을 잊어버리고 몇십 년을 살게된다.서울 인구 밀집으로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분당 및 일산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삶의 질이 변하기 시작된다. 

 
▶ 비봉능선은 평화로운 길이다. 자비가 넘치는 길이다. 1990년대를 지나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거침없이 나아간다. 내부의 문제는 하찮은 것으로 뭉개고 경쟁에 발전을 거듭했다

 
▶코끼리고 살고 있는 통천문을 지난다. 아주 편한 비봉 능선길에도 여러 곳 거친 바위가 나오는데 잘 살피면 그리 어려운 곳은 없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우뚝 선 대한민국을 향해 세계가 극찬하는 시절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우리 민족의 끼가 살아난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의 활약으로 K- ~~~ 가 무한 확대되고 있다. 

 
▶살면서 자주 되돌아봐야한다. 산길에서도 마찬가지. 앞만 가다가는 이런 멋진 풍경을 놓치기 쉽다.

 
 
▶친구와 의상능선-비봉능선 종주하며 여기서 점심 먹었던 때가 벌써 10여 년 지나간다. <빨리빨리> 한국인의 행동 양식이 나이에도 적용되는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승가봉 올라가는 바윗길. 50대 아주머니가 힘들게 내려온다. 내가 자기 동료로 착각하고 손잡아 달라 폴대 대신 받아 옮겨달라! 산길에서는 언제나 이웃이고 친구이고 웃음이다. 

 
 
▶10여 년 전 처음 여기 걸을 때 여기서 한참을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놀라운 풍경이었다. 마음이 바쁘다. 오늘 오후 4시 국회에서 1주일 전 부결된 대통령 탄핵 투표가 진행된다. 벌써 지하철이 무정차로 통과한다고 뉴스로 나온다.

 
▶사모바위. 오후 따뜻해지며 많은 중년들이 올라와 있다. 가정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다. 사회가 발전하며 모든 면에서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 관봉에서 잠시 멈추고 지나온 길을 살핀다. 앞으로 가다가 수시로 뒤돌아 봐야 한다. 보지 못한 진풍경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좀 늦어도 불광동까지 걷는다. 전철 타기가 가깝기에 더 빠른 길이다.요즘 해외 다니다보면 한국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어가  들리고 노래가 흘러나오고 한국산 식음료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수직의 절벽 바위에 뿌리 내린 소나무. 비봉 바라기

 
▶탕춘대로 내려서면 아주 편한 길이다. 오늘은 힘들게 끝까지 걸어 여의도로 가야한다. 

 
▶ 족두리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운 거리로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산행 막바지 상당한 거리가 남아있다. 이번 123비상계엄 국민들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보아야한다.범죄자들은 죄값만 치르면 되지만 무너진 대한민국은 어떡할거냐! 잘못된 부분을 과감히 정리해야한다. 

 
▶ 여기 등산로 곳곳에 안전시설이 추가되었다. 알아서 갈 수도 있는 길인데 과할 정도로 간섭하는 것도 문제다

 
▶ 되돌아본 향로봉에는 불꽃이 올라오는 듯 밝은 분위기다.

 
▶ 족두리봉.여기서는 내려가는 길에 있지만 불광동에서 올라오는 힘든 길에 위치하고 있다.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 족두리봉 입구에 도착하니 여의도 시간에 맞추기 빠듯하다. 바로 하산한다


▶ 불광동으로 하산 하는 길. 속세 가까이 붙어 이런 산이 있음은 축복이다. 

 
▶대호아파트 날머리. 북한산 시작과 끝이 되는 지점중 한곳이다. 옛일을 생각하며 걸어던 먼 길 마무리된다

 
▶종로3가역에서 환승한 5호선은 말 그대로 콩나물 시루다. 여의도역에서 밀려가는 시민들. 소년은 오지 않고 <소녀가 온다>. 유난히 20대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 지난 선거에서 정치꾼의 세 몰이에 20대 남성들은 몰려 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현장을 보고 있나! 정치인들의 횡포에 정치가 싫어 멀리하면 어떤 결과가 되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보고 있다. 눈 부릅 떠고 지켜야한다. <타내기다비다> 개사한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북한산에서 여의도에서 고생한 나를 위한 만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