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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걷기/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9코스 교동도 다을새길 <월포선착장 - 화개산> 2017. 08. 22


여름이 시작되며 같이 시작한 강화나들길 걷기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강화 교동도로 들어간다.

소나기가 예보되고 비교적 흐리다는 예보를 믿고 강화도로 향한다.


집에서 출발하는데 일기 예보와 달리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올 여름 강화도에서 맑은 날 보기는 힘들었는데

오늘 최고의 날씨를 선물 받았다.


교동도에 도착하니 간간히 시원한 바람도 불어온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 9코스 : 13.6Km / 215.6Km (트랭글GPS)




▼<11:09>민간인 통제구역인 교동도 들어오기 위해서는 몇번의 검문을 받아야한다. 교동대교를 지나 월선포 선착장에 주차한다. 오늘 9코스는 한바퀴 돌아 원점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다을새는 교동의 옛지명으로 대운도(戴雲島:구름에 뜬 섬) 또는 달을신(達乙新:하늘에 닿을 새)이라 하였으며 다을새는 달을신의 소리음이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건너편 창후선착장에서 여기 월선포 선착장까지 배가 다녀 두 곳다 아주 분주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텅 비어버렸다. 출발 준비하며 몇장 담아 본다. 흙탕물 위로 시원스레 펼쳐진 교동대교


▼건너편 해발 416미터 별립산이고 그 아래 창후 선착장이 보인다.


▼석모도 상주산


▼준비 끝났으면 출발 합시다.


▼커다란 좌물통이 채워진 선착장 대합실. 그래도 좌판을 펼치신 할머니는 우리를 반기고 계신다. 화개산 올라가면 맑은 날이라 북쪽이 잘 보일거라고 다녀오라고 하신다.


▼어딜 가나 종교 시설 규모는 대단하다.


▼여기는 교동면 상룡리. 파란 가을 하늘 군데 군데 먹구름이 날아 다닌다.


▼마을 뒤로 오늘 올라 갈 화개산


▼예전에는 고추를 말려서 가위로 일일이 꼭지를 따곤 했는데 이제는 수확할 때 아예 꼭지를 제거하고 진행한다. 소비자를 위한 배려랄까! 잘 익은 고추가 가을 햇살에 잘 마르고 있다.


▼잠시 숲길로 들어 오는데 폐건물이 보이고



▼사유지에 출입금지 소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여기도 분쟁이 있나 보다.



▼<11:42>포장길을 버리고 교동향교 가는 숲길로 들어간다.


▼안양사가 있었던 절터. 의자가 있어 쉬어가는 곳이다.


▼비가 자주 왔으니 시원한 물이 넘쳐 흐른다. 숲속만 들어 오면 더 신나는 사람




▼<12:09>1시간 정도 걸어 도착한 우리나라 최초 향교인 교동향교

『1127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 화개산 북쪽에 있던 것을 조선 중기에 부사 조호신(趙虎臣)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66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제기고(祭器庫)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명륜당


▼대성전





▼지금은 석축공사가 한창이다.


▼향교에서 나와 한장 남기고



▼향교 왼쪽에 약수터가 보인다. 성전약수로 지금은 수량도 적고 물맛도 별로 나지 않았다.


▼화개사 가는 길은 아스팔트가 포장되어 있고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걸어간다.


▼<12:26>화개사 도착. 맑은 날이라 아름다운 교동도 풍경을 즐기고 있으나 땀이 많이 난다. 좀 쉬어가자


▼화개사 법당


▼화개사 마당에서 내려 다 본 석모도 성주산 및 강화 본섬


▼200년 넘은 소나무 아래에서 과일 챙겨 먹으며 손풍기로 얼굴을 말린다.


▼화개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대룡시장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곳. 이 곳에서 갈등하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우리는 정상으로 올라간다. 임도길로 편하게 오르다 마지막 가파른 바위길을 오르면 봉수대에 먼저 도착하게된다.


▼몸에 아주 좋은 기운만 쏙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임도길 걷기


▼굵은 자갈이 깔려 있는길


▼가파른 바윗길이다.


▼왼쪽으로 교동도의 너른 들판이 보인다.


▼<13:05>화개산봉수대 도착.


▼봉수대에서 화개산 정상으로 가는 편안한 길. 약 250미터 걸어야한다.


▼강화화개산 청동기 암각화. 자세히 보니 새긴 그림이 보인다.


▼화개산 정상 직전.


▼<13:13>해발 259.6미터 화개산 정상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서해. 미법도 및 서검도 방향


▼교동도 남산포 선착장


▼석모도


▼강화 본섬


▼오늘 남쪽은 맑은 하늘인데 북쪽으로는 제법 뿌옇게 보인다. 산불감사초소 계단으로 올라가 강화만 건너 북쪽을 찍어 본다. 드러난 갯벌 너머로 황해도가 희미하게 들어 온다.



▼우리를 따라 올라온 사람이 있어 같이 인증한다.


▼앞에 쏫아오르는 가지를 쳐내어야 방해 받지 않고 볼수 있겠다.대남방송인지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다. 간간히 총소리가 단발로 울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논밭에 새들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폭음장치에서 나는 소리였다.


▼정상 모습을 남기고 내려가자.



▼<13:26>배가 많이 고프다. 내려 가는 길은 아주 정리가 잘되어 있다.


▼청동기 시대 인간들이 바위에 구멍을 새기고 주술 행위를 행한 흔적이 남아 있다. 성혈바위를 지나간다.




▼쥬라기 공원에 놀러 온 듯하다.



▼북한이 아주 가깝네!



▼<13:37>화개약수. 물이 콸콸 나오고 아주 시원하다. 아무도 없고 우리 독점이다. 세수도 하고 빈병에 가득 재우고~~~.




▼<13:53>연산군 유배지 도착. 위리안치는 예전 죄인 귀양살이하는 에서 달아나 못하도록 가시 울타리 만들고 안에 가두어 이르던 . 위리안치된 집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어 두었다. 교동도 읍내리로 귀양 온 연산군은 화개산 아래 여기로 위리안치되어 두달만에 병사하게된다.



▼아름다운 하산길이 끝나간다.



▼10코스 수정산 올라 가기전에 본 한증막이 여기도 있다. 1970년대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숲에서 내려오니 바로 양산을 펼친다. 대룡시장 가는 길


▼<14:11>교동면사무소 앞을 지나고


▼교동초등학교도 지난다. 개교 100주년 기념비를 보니 1906년 개교한 학교다.



▼교동시장을 간단히 둘러 본다. 평일이라 나들이객은 거의 없다.






▼주말이면 줄이 꽤 길었는데 오늘 우리는 여유 있게 한 봉지 담았다. 덤으로 한개 더 넣어 주기까지!




▼<14:56>점심 먹고 출발하는 시간이 거의 3시. 시장 구경 끝나고 간단히 냉면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점심 같이하며 자전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 분 목동에 계시는 60세 아저씨로 일년에 두번 부산까지 왕복 라이딩을 한다고한다. 1,200Km를 약 60시간 이내로 다녀온다고 한다. 놀라운 세계다.오늘도 집에 도착하면 200Km 정도 된다고 한다. 늘 안전한 라이딩 즐기십시오



▼교동 들판으로 나간다. 여기 폐가 주변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높이 올라와 있다.


▼마을로 들어 오니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고 하늘은 더 파랗게 열린다.



▼화개산도 높아 보인다.


▼토마토 시설재배 현장이 신기하여 구경했다. 공중 부양된 뿌리에 파이프로 모든 영양분과 물을 공급하는 구조









▼날도 뜨겁고 다리도 아프고 좀 쉬어 가자


▼<15:43>읍내리 마을로 들어온다.



▼복원중인 교동읍성 남문에 도착한다.

 『둘레 약 430m. 높이 약 6m.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이 성곽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성으로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이라 한다.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1753년(영조 29)에는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여장(女墻)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는데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그 뒤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남문의 유량루는 1921년의 폭풍으로 무너졌으나 홍예(虹霓)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도서와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외적의 방어를 위해 고을성을 많이 축조하여 왔는데 교동읍성 이외에도 인근의 강화읍성, 충청남도의 해미읍성과 안흥성, 전라북도의 고창읍성,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등을 들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룡이 나왔다는 황룡우물


▼길이 없을 것 같은데~~~


▼연산군적거지. 귀양와 살던 곳이고 그 앞에 우물이 보존되어 있다.



▼잡초만 제거되어 있으면 걷기 정말 좋은 길이다. 9코스는 가을에 한번 더 오고 싶다.



▼<15:57>이제 나들길은 해안길을 걷게 된다. 물이 들어 오는 시간이라 물살이 거칠게 밀려 온다.







▼제방위로 나들길이 펼쳐 지는데 키 만큼 자란 잡초들과 갈대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빠른 시간내 벌초 작업이 진행되어야겠다.








▼거의 다 와 간다. 사진 남기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물살은 더욱 거세지고



▼우리는 제방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한다. 몇몇 나들길 후기를 보니 여기서 데크길로 선착장으로 바로 가던데 안 보인다. 무너져 내렸는지?



▼산창장 뒤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오늘도 두꺼비 한마리와 만난다.



▼<16:39>먹거리 좌판을 펼치신 할머니가 우리를 반긴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가계에 음료수 들이키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이쁜 풍경을 다시 한번 더 담아보고 할머니 좌판에서 몇가지 담고 출발한다.




▼<17:44>적석사 대웅전 도착. 지난번 17코스 탐방시 낙조대에 올랐으나 구름에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오늘 맑은 날에는 올라가야할 것 같아서 헨들을 돌렸다. 법당에 들렀다 바로 낙조대로 올라간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잘 왔다고 둘이서 기뻐하며 일몰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해수관음보살 좌상


▼고려저수지 뒤로 덕산이고 그 너머는 외포리 지나 석모도




▼혈구산 자락


▼혈구산


▼고려산


▼고려산과 혈구산을 이어주는 구름다리 그 뒤로 희미한 바위산이 북한산(?)


▼뒤로 낙조봉


▼오늘 계 탄 날이다.







▼해가 내려 가는데잘 담아내지를 못한다. 떨어지는 해를 보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19:21>관음굴에 잠시 들렀다 집으로 출발한다.



▼오늘도 저녁은 막국수.


▼오늘도 앱은 여러번 다운된다. 다시 켜면 운동시간은 합계가 안되네. 오늘 쉬엄 쉬엄 둘이서 5시간 40분 정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