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거운 걷기/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창후선착장 - 외포여객터미널> 2017. 07. 16


간밤에 많은 비가 내렸다.

새벽에 천둥 소리에 잠이 깨어 오늘은 쉬는 날이다 했는데

아침 먹고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창 밖이 훤하다.


간다고 하니 가방 챙기고 따라 나서네! 


강화도 외포리 가는 길은 주말마다 차들이 가득하다.

석모대교가 개통되면서 이 쪽으로 나들이 차량이 많이 몰리나 보다.

외포리 선착장 부근은 아주 한가하여 여유있게 주차한다.


★ 16코스 : 11.4Km / 누적 : 106.9Km (트랭글GPS)




▼<12:05>늦게 출발하니 외포리 가는 길이 막힌다. 외포리선착장에 주차하고 택시를 찾는데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다. 창후선착장까지 13,000원으로 도착하니 텅 빈 선착장이다. 여기가 창후선착장으로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하기 전에는 교동도 들어가는 배가 여기서 출발했다. 이제는 여객터미널은 굳게 닫혀있고 배에 오르기 전 차량 대기선은 텅 비어 있다. 다리 하나가 여기를 을씨년스럽게 만들었구나!


▼교동도 배가 출발할 때는 여기도 대단히 번창했는지 강화나들길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고 어판장도 여러곳 있다.


▼이제는 활기를 잃어버린 횟집들


▼갯벌에 박혀있는 선박 뒤로 보이는 교동도 및 교동대교


▼여기는 석모도 상주산 방면


▼방치된 녹슨 닻이 창후선착장의 지금을 말해 주는 듯하여 안타깝다.


▼인증사진 남기고 걸어 봅시다. 그리 뜨겁지 않아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네.


▼창후선착장 부근에 이런 물건이 서 있다. 308Km를 달린다고!!!.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너무 많구나.


▼이제 나들길은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 오른쪽 석모도를 같이하며 제방길을 걷게 된다.



▼새벽까지 비가 내렸으니 이런 길은 각오하고 나왔다. 곳곳에 고인 물이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왼쪽으로 우뚝 서있는 해발 416미터 별립산. 산 정상에 군 시설인지 제법 큰 건물이 보인다.


▼이 길 오늘 첫 손님이 우리인지 거미줄이 계속 설치되어 있다. 가지로 앞을 헤치며 가야한다.



▼오른 쪽 석모도 해발 264미터 상주산



▼뒤돌아 본 교동도. 중앙에 자리한 해발 259.5미터 화개산. 강화나들길 교동도 구간이 9코스 및 10코스인데 화개산 정상을 오르게 되어 있네!


▼봄에 더 아름다운 길이겠다. 지금은 칡이 작은 나무를 타고 넘어 바닥까지 덮고 있다.


ㅁㅁ



▼강화도 대부분의 농지가 고려 시대부터 간척 사업으로 확보된 땅으로 여기 망월리 망월평야가 단일 간척 평야로는 가장 넓다고 한다.



▼비가 그친 뒤 미련이 남은 구름들이 여기 저기 헤매고 있고 걸어갈 길은 선명하게 우리 눈에 들어 온다.


▼지금은 물이 빠지는 시간인지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앞에 성주산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멋진 강화 바다를 구경할 수 있겠다.


▼뒤돌아 본 교동도


▼2014년 개통된 교동대교


▼돌무덤이 해안가에 제방과 연결되어 나열해 있다. 1998년 대규모 해일로 제방이 유실되었다는데 이를 막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잠시 사진 남기는 시간.




▼그림 같은 풍경이 계속된다. 아침에 게으름 피우다 그냥 집에 있었으면 이런 즐거움을 맛 볼 수 없지!


▼<13:12>망월돈대 도착. 다른 돈대에 비하면 아주 낮게 설계되었는데 사방이 탁 트여 경계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망월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방형구조로 둘레 124m, 석벽의 높이는 180~300㎝이다. 대개 돈대들이 해안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망월돈대는 갯가 낮은 지대에 설치됐다.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어 경계초소로 부족함이 없다. 남쪽으로 계룡돈대, 북쪽으로 무태돈대가 있다.』강화군청








▼망월리 역사


▼망월평야 넘어 별립산


▼강화도 수로는 한강에서 끌어 온 물로 채워진다는데


▼외포리에서 창후로 택시 타고 올 때 기사님이 저 산이 혈구산이라고 했다. 구름이 출렁이며 능선을 주행하고 있다.



▼반때 쪽에서 바라본 망월돈대 및 별립산





▼혈구산을 더 가깝게




▼개가 우리를 쳐다 보며 꼼짝을 않고 있다. 앞에는 개의 사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보인다. 동료인지 자식인지 주검을 지키고 있다. 강화도에 놀러 왔다가 반려견을 버리고 가는 일이 너무 많다고 택시 기사님이 흥분하시던데 이 개도 그런 아픔을 안고 있는지!




▼<13:51>규모가 상당한 계룡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구조물이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옛날에는 규모가 큰 군사시설을 진이라 하고 작은 것은 돈대라 하였는데,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돈대를 설치해 적군의 침입을 감시하고 직접 싸우기도 했으므로 오늘날의 초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강화도에는 53개소의 돈대가 남아 있는데, 1679년(숙종 5)에 설치된 것이다. 계룡돈대는 경상도 군위(軍威)의 어영군사(御營軍士)들이 축조한 돈대로, 강화 53돈대 중 유일하게 축조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30m×20m의 직사각형 모양이며, 한 면은 석축 높이 2m 정도에 길이가 30m이고, 3면은 석축(石築)되어 해변을 향해 정면으로 외적을 볼 수 있다. 망월(望月)돈대와 함께 직접 영문(營門)에서 관할했다. 석축 하단에 ‘강희18년 군위어영 축조(康熙十八年軍威禦營築造)’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사방 경계가 확실한 포인터다




▼제방으로 걷는 시간은 끝나고 이제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길로 들어 간다.





▼농촌체험 마을로 유명한 용두레 마을을 지난다. 갯벌로 나가는 트렉터도 보이고 이쁜 조형물도 보이는데 사람이 없어!



▼가동을 멈춘 정미소 같은데






▼왼쪽 황청저수지


▼수녀원 앞까지 가파른 길을 오른다.





▼수녀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숲길로 들어간다. 국수산 옆구리를 지나가는 길이다.



▼<14:39>여기도 산이라고 제법 힘드네! 가방에 있는 먹거리 치우는 시간. 얼음물도 이제 마지막이다.


▼국수산 정상까지 500미터 이정표를 지난다.


▼오늘도 이름 모를 버섯을 살피고


▼젖은 길 바닥에는 뭔가를 끌고 간 흔적이 남아 있다. 멧돼지인가?


▼숲길 입구 쪽에 산악오토바이 출입 금지란 푯말을 보았는데 오토바이가 지나간 길이다.


▼이것도 버섯!


▼오래 전에 설치된 쉼터였는데 이제는 그 생명을 다했구나!



▼<15:06>이제 이 길도 끝나간다. 유스호스텔 도착


▼왼쪽에 외포리 마을


▼석모도 들어 가는 길을 건너고


▼석모대교가 가까이 있네




▼지난 주 혼자 올라 왔던 망양돈대



▼삼별초항쟁기념비로 내려온다. 지난주 여기와서 진도개가 있고 돌하루방이 있어 이상했는데 삼별초 항쟁이 있었던 3곳, 즉 진도 그리고 제주도 및 강화도를 상징한다고 설명하네!





▼<15:29>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하여 16코스를 마무리한다. 도착 인증은 안내소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냥 지나가자. 강화도 5일째도 별 탈 없이 잘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