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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걷기/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18코스 왕골공예마을 가는 길 <강화역사박물관 - 강화역사박물관> 2017. 08. 08


지난 일요일 비가 예보되어 집을 나서지 않았는데

그러나 그날은 제법 맑은 하루가 되었다.


직원들 휴가도 마무리되어 오늘 하루 강화도로 가기로한다.

비는 없다고 예보하는데 강화도에 도착하니 공기중에 밀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는것 같아

바로 앞 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입추가 지나니 아침 공기가 약간 달리짐을 느낄 수 있고

해도 그리 따갑지 않게 다가온다.


★ 18코스 : 14.5Km / 누적 : 148.0Km (트랭글GPS)





▼<07:20>새벽에 일찍 나온다고 서둘렀는데도 이제야 도착한다. 바로 앞 고려산 능선이 희미하게 윤곽만 보여준다.


▼18코스 출발지는 강화역사박물관 앞이다. 박물관이라고 꼭 옛모습을 보여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물이 너무 현대식이다. 여기는 청동기 시대 유물이 나오는 곳인데!


▼<07:37>주차장에 차 세우고 볼일 좀 보고 이제 출발한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하는 하루가 되겠다.



▼강화도 수로에는 늘 물이 넘쳐난다. 강화는 오랜 시간 활발한 간척 사업으로 농토가 많고 그에 따른 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오늘도 이 리본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 보자



▼여기도 자전거길이 그어져 있다.


▼마을 뒤 봉천산 정상



▼강화도에는 종교시설이 많구나! 시골에도 대형 교회가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이 여름이 지나가야 능소화도 물러나 앉을려나!



▼18코스 첫 방문지 장정리 오층석탑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 쪽 폐가를 뒤로하고 오층석탑으로 올라간다.



▼<08:06>장정리 오층석탑 입구 도착. 나들길은 오층석탑으로 올라 갔다가 내려와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야한다.



▼장정리 오층석탑

『봉은사지 오층석탑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탑은 단층기단 위에 탑신부를 형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탑 주위에 고려시대 사찰인 봉은사가 있었다 전하나 현재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 봉은사는 개성에 있던 고려시대 국찰로 고종 19년(1232)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길 때 함께 옮겨졌다. 발견 당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재를 196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갑석은 부연 없이 상(上)면에는 낮은 1단 괴임으로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에는 탑신, 옥개석 1석씩 되어 있으며, 옥개석 받침은 4단 또는 3단으로 불규칙하다. 현재는 탑신 2석과 옥개석 4석이 있고 상륜부는 없어졌다. 남아있는 부분의 높이는 3.5m로 만든 방법으로 보아 년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오층석탑에서 내려와서 숲으로 올라와 묘지를 지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니 죽은 나무로 길을 막았다.



▼길이 수정되었나 생각하며 다시 되돌아 나와 리본을 따라 내려가니 조금전 올라왔던 길이다. 다시 올라와 진입하니 나무로 막은 길 바로 옆에 길이 나 있다. 아침부터 아주 잠깐의 알바를 하게 되었다. 이후로 더 이상 알바는 없었다.


▼숲속에도 리본및 표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여러 포스팅에 이 사진은 반드시 나오던데! 석조여래입상으로 넘어가는 다리


▼<08:34>석조여래입상 도착


『하점면 장정리에 소재한 이 불상은 두꺼운 판석 위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입상이다. 전체적으로 장대하고 불신의 비례가 좋은 편이나 큰 얼굴, 좁은 어깨, 큰 손 등이 다소 균형감을 깨고 있다. 지금은 전각을 세우고 그안에 모시고 있다. 높이 2.8m의 마애불로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둥근편으로 입가부터 양쪽 볼과 눈매에 이르기까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다. 전체적으로 입상의 하반부는 간략하게 조각되어 있다. 얼굴표현, 법의 층단식처리, 광배, 화염문 등의 표현방법으로 보아 제작시기를 11세기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전설에 의하면 고려 예종1년(1106) 3월 7일(음)에 한 노파가 연못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때 갑자기 오색 무지개가 찬란하게 비추더니 연못에서 옥함이 떠올라 열어 보니 옥동자가 비단에 쌓여 있었다 한다. 노파가 신기하여 아이를 임금에게 바치고 궁중에서 기르게 하였다. 왕은 이 아이의 성을 『봉』이름을『우』라 하였고,총명한 이 소년은 10세에 등과한 후 고려 조정에서 큰 벼슬에 올랐다. 이후 5대손 봉천우가 정승에 올라 조상의 은공을 기리기 위하여 봉은사라는 사찰을 짓고 노파의 갸륵한 은공을 받들기위해 오층석탑을 쌓고 또한 이 석조여래입상(일명-석상각)을 새겨 매년 제사을 올려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한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이쁜 마을길을 잠시 걸으면 찻길이 나온다.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좀 걸어야 한다.



▼길에 방치된 농기계. 어떤 일을 하는 기계인지?


▼길가 수수 열매가 고개를 쑥이기 시작한다. 계절이 바뀌기 시작한다.


▼까페 정원이 연밭이다.



▼아스팔트길은 군부대를 지나 양오저수지 방향으로 들어 간다.




▼양오저수지에 접근한다.하늘은 여전히 뿌연 밀가루를 뿌리고 있다.


▼벼 이삭이 나오고 있다. 올해 강화도는 풍년이 될 듯하다. 뜨거운 태양을 받아 여물어가면서 조금 있으면 고개를 쑥이겠지!


▼<09:23>양오저수지. 아침부터 꾼들 몇이 자리 잡았다.


▼저수지에 반영이 비치면 참 평화로운 풍경이 연출된다. 조용한 마을로 보이는데 여기 저기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이미 많이 개발된 강화도에 오늘도 계속되는 건물 신축 현장이 보인다.




▼먼지 날리는 공사 현장을 멋어나 마을로 내려오니 정자가 보인다. 마을 어르신들이 더위를 식히는 곳인지 커텐이 있고 집기들이 보인다. 오전에는 내가 잠시 빌리기로 한다.




▼양오저수지 아래로 내려와 논길로 들어간다.



▼여기는 벼 이삭이 벌써 쑥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자전거길이 잘 정리되어 나들길과 같이 한다.



▼내다 버린건지! 작품처럼 전시한 것인지!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었네!


▼강화화문석문화관으로 우회전한다.


▼박물관 앞을 지나 오른 쪽으로 오르면 강화화문석문화관에 도착한다.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다 지은 건물이 방치되어 있다.


▼<10:08>강화화문석문화관에 도착. 밖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방문을 마치고 나들길로 빠져 들어간다.




▼기이한 모습의 소나무. 주변을 정리하여 볼 거리로 만들면 좋겠다.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길


▼논두렁 풀 베는 아저씨와 한참을 수다했다. 강화도에는 올해도 풍년이 들거라고 한다.


▼농로를 벗어난 나들길은 잠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10:34>잠시 마을길로 나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최근에 나들길이 수정 되었다고 하던데 몇몇 포스팅에서 보던 길과는 다르다. 칡이 덮어 버린 폐가를 돌아 간다.


▼폐가를 지나 밭 가장 자리로 죄회전하여 숲으로 들어가는데 집주인이 나와 어디가냐? 왜 이리 길을 내어 우리를 괴롭히냐! 며 뭐라 하신다. 예 하면서 바로 도망가듯 올라간다. 공무원이 한번 다녀가야할 듯하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숲길에 들어 왔다. 물탱크 울타리에 4월부터 변경된 나들길을 안내하고 있다.




▼<10:53>숲길에 들어서 20분 정도 걸으면 고인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부근리고인돌군. 하나 하나 번호가 부여되어 관리되고 있다.

『1964년 7월 11일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로, 비지정인 128번 고인돌을 제외한 9기가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대촌부락 마을회관 앞에 있으며 미군부대 전입 등으로 현재 4기만 남아 있다.받침돌[支石]은 두개의 긴 굄돌만 있는데 방향은 대략 남북이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표면조사가 이루어졌을 뿐 아직 학술적인 발굴조사는 행해지지 않은 유적이다. 이 고인돌 바로 옆에 또 하나의 파괴된 고인돌이 있는데, 굄돌은 없어지고 판석의 뚜껑만 수직으로 엎어진 채 남아 있다. 이 밖에도 강화도에는 삼거리·하도리 등지에 북방식과 남방식이 10여 기 남아 있어서 부근리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사회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근리고인돌을 지나 숲속을 나오니 잡초들이 길을 완전히 장악했다. 길 흔적은 거의 없고 리본 및 이정목이 있어 풀을 헤집고 나아간다. 아침에 출발한 박물관이 보인다.






▼<11:15>거대한 지석묘가 있는 역사박물관에 도착한다. 둘레에 세계 각국의 거석 모형이 줄지어 서 있다.




▼넓은 잔디밭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지석묘


▼세계문화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




▼주차장으로 회귀하여 18코스를 마무리한다. 점심은 차속에서 시원한 바람 켜고 간단히 해결한다. 온도가 내려 갔다고 해도 상당한 더위에 땀 많이 흘렸다.




▼앱이 수시로 꺼지고 다시 열었는데 거리는 합계되어 나오는데 시간은 다시 셋팅이 되었다. 실제 소요 시간은 3시간 50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