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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걷기/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8코스 운리 - 덕산 2018. 10. 14


막걸리 한병 마시고 나니 눈이 감기기 시작하여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구간도 난이도 상으로 표시되어 힘든 시간이 되겠구나!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가야한다.

걱정하면서 또 한 구간에 발을 올린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마을에서 산청군 시천면 사리까지 걷는 13.9km의 지리산 둘레길. 운리를 지나 농로를 따라 걷다보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걷는 길에서 백운동 계곡으로 가는 길을 만난다. 이 길은 나무를 운반하는 운재로였다. 임도 아랫부분에 너른 길이 울창한 참나무 숲속에 남아 있다. 참나무 숲을 걷다보면 너들도 만나고 작은 개울도 지난다. 좁아진 길을 지나 백운계곡을 만나고 백운계곡에서 마근담 가는 길은 솔숲과 참나무 숲을 지난다. 남명조식선생이 머물렀던 산천재가 있는 사리에서 바라보는 덕천강과 천왕봉은 아름다움과 굳센 기상을 담고 있어서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의미있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




▼<13:06>계곡 감나무가 너무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오후에는 같이 이번 1박 2일 여행 마지막 구간에 발을 올린다.



▼원정마을 당산나무



▼이 마을은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분지에 가까운 지형이다. 그래서 구름이 많이 모이는 마을이라 불렀나 보다.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넉넉하게 살고 있는 양반들! 부럽다





▼이제 둘레길은 완만한 임도길로 올라간다.




▼<13:46>앞이 탁 트인 정자 전망터에 도착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그림 같은 풍경이 계속된다.



▼앞서 가다가 왼쪽으로 들어가는 들머리를 지나친다. 지금부터 산길로 들어가 완만하게 오르게 된다.





▼<13:46>참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너덜지대도 지나고





▼<14:52>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 내리는 백운계곡에 도착한다. 남명 선생이 이 곳도 다녀갔다고 한다.




▼이 길이 지루하고 볼거리가 없어서 인지 백운계곡을 건너자마자 할배들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둘레꾼을 맞이하고 있다.



▼산속에 한 분을 만났다. 도토리가 너무 많아 동물들이 다 못 먹는다고 자기도 주우러 올라간다고 한다. 정말 많이 떨어져 있기는하다.


▼<15:09>완만하게 오르던 산길은 이곳 용무림재 도착 직전 잠시 치고 오른다. 이번 여행에서 오름은 이제 끝났다.



▼이번 가을 폭우에 이곳도 피해를 입었나 보다. 위험하다고 금줄이 있다. 덕산 마을 이정목 아래 폭우로 등로 피해가 있어 임시 폐쇄한다는 안내장을 보았는데 이곳 때문인지? 조심해서 잽싸게 건넜다.



▼바위 홈에 뿌리를 내린 나무


▼<15:31>마근담. 산속 깊히 막혀 있는 곳이라고 마근담이란다.



▼이 부근 시멘트 포장 도로에 도토리가 엄청나게 보인다. 한 주먹 담아 왔다.


▼노란 감이 길가는 사람들 손을 유혹하고 아래 인기척이 들리는 농장이 보인다.




▼이 곳 지명은 사리로 나오고 다리를 건너니 쉼터가 보인다.


▼물건처럼 보이는 돌이 여러개 전시되어 있고 대문에는 CCTV 설치되어 있으니 절대 출입금지 간판도 보이고 안에 있는 개 두마리는 본능적으로 짖어 대고있다.



▼골짜기 조금 내려오니 감나무가 엄청나게 모여 있고 곶감 가공 농장이 집중해 있다.



▼계곡에 바구니가 보이는데 무엇하는지 궁금하다. 빨간색의 물체인데?



▼계곡물에 머리 감고 나니 너무 개운하다.


▼개곡물을 끌어 들린 빨래터. 정겨운 마을 풍경이다.



▼<16:51>거의 다 내려왔다. 우측으로 돌아가면 남명 기념관이 나온다.


▼폭우로 위험지점이 발생하여 정밀 진단 중이라고 임시 폐쇄한다는 안내장이 보인다.



▼<16:54>남명 기념관에 도착한다. 저물어도 들어가 본다. 평소 지리산이 너무 좋아 12번 정도 천왕봉에 올랐고 몇곳을 수소문하다가 61세에 천왕봉이 보이는 여기 덕산에 산천재를 마련하고 기거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조식(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 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조식(曺植)의 자(字)는 건중(楗仲)이며, 경상도 삼가현 사람이다. 한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비로소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파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 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혹은 오늘날의 경상남·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백명의 문도를 길러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사후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가 북인 집권 후 1613년(광해군 7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위키백과




▼기념관 내부. 손 때 묻은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관리하는 직원이 남명 조식에 대해 몇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남명 선생 위폐를 모신 사당






▼길 건너 산천재로 들어간다.




▼산천재 마당에서 바라 본 천왕봉. 오늘은 구름이 내려 앉았다.





▼산청삼매 하나인 남명매. 남명 조식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데 수령이 450년 정도 되었다 한다.


▼천왕봉 위 구름



▼이 구간 종점이 보인다. 덕산 시가지로 접근하고 있는데 길 양쪽에는 감나무가 줄을 서 있다.



▼<17:22>산청시천우체국 부근이 종점이라 생각했는데 이정목이 안 보인다.



▼나중에 확인하니 여기 덕천시장 지나 다리 앞에 이정목이 있었다. 둘이서 1박 2일 먼 길을 걸었다. 다리는 고생했으나 눈은 아주 즐거웠고 이 가을 지리산과 같이 한다는 현실이 너무 좋다. 주말에 행사가 계속 있어 이번 달에는 내려오기 힘들어 보인다. 다음 지리산둘레길 여행을 기약하며 집으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