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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산행/충청

[황정산]기억에 남을 짧은 바윗길이었다 2022.06.26(빗재-황정산-영인봉-원통암-대흥사)

황정산 정상과 아래 영인봉 사이 길이 험하다고 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시무시한 로프가 보이는 바윗길이 상당히 어려운 길로 보인다. 일단 올라가 확인해 보자. 집을 나서는데 어제처럼 오늘 아침도 온통 운무 속이다. 오후 되며 해가 살짝 보인다는 단양 지역 일기예보를 믿고 오른다. 빗재 들머리에 도착하니 부산에서 올라온 대형버스가 주차해 있다. 

 

산수 아름다운 청풍 명월의 고장 단양에는 숨어 있는 명산이 많다. 주변의 사인암 등 단양팔경의 그늘에 가려 그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산중 하나가 황정산(959m)이다. 최근 들어서는 황정산 칠성바위가 신단양팔경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세가 수려하다고만 해서 명산의 반열에 드는 것은 아니다. 명산이란 그에 걸맞은 고찰 하나씩은 품고 있는 법인데 신라 때 창건된 천년 역사의 대흥사와 원통암이 황정산의 산격을 뒷받침하고 있다.원래 대흥사는 건평 6,000여평에 500 나한과 1,000명의 승려가 있었던 대가람이었으나 1876년 소실되었고 현재는 원통암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넓고도 미끈한 마당바위, 칠성암 , 하얀 화강암, 노송과 고사목의 절묘한 비경, 누에바위, 괴물 바위, 돌탑 바위, 남근 바위 등도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오늘 여정 : 빗재들머리 → 남봉(01:02 1.7Km) → 황정산(01:36 2.4Km) → 영인봉(02:38 3.5Km) → 원통암(03:12 4.6Km) → 대흥사(04:15 6.4Km) - 트랭글 거리 집계 오류 발생하여 Relive 기록에 근거함

▼<10:55>황정산 빗재 들머리. 보통 도락산과 연계산행으로 도락산에서 하산하여 빗재에서 남봉을 거쳐 황정산으로 올라간다. 해발 500 이상 되어 한결 수월한 산행이 될 것 같아 여기서 출발한다. 수리봉을 거쳐 오는 종주길이 있는데 더운 날 쉽지 않은 길이라 사양하고 쉬운 길을 선택했다.우리 차량은 사인암 구경하고 대흥사에서 만나기로 한다. 

▼시작은 부드러운 흙길에 완만한 오름이 계속된다. 부담이 전혀 없는 산행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오늘 산행 내내 만나게 되는 작은 꽃은 꼬리진달래. 한그루가 바위에 자리 잡았는데 올라오니 도락산을 바라보는 전망대. 건너 도락산 정상은 구름에 갖혀 버렸다. 

▼왼쪽으로 황정산의 멋진 바위가 줄지어 누워 있다. 저 위로 걸어가는 길이 있을까?

▼꼬리진달래

▼서서히 바위가 나오고 여기는 바위 전망터. 아래 방곡리 마을만 겨우 보이고 다 안개 속이다. 

▼전망 바위에 고대 조각상이 넘어진 듯한 바위가 누워 있다. 

▼길은 점점 험해지며 구름 속 능선은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11:57>별다른 표식은 없는데 여기가 남봉이다. 트랭글에서 정상 인증 신호가 울렸다. 

▼사진이 흔들렸다. 남봉에서 편안한 흙길을 잠시 걸으니 바위길 울타리가 나오고 살짝 보이는 앞 산들이 그동안 답답한 조망을 조금이라도 보상해준다. 

▼중앙 뾰족한 봉우리가 올산

▼황정산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바위와 어울려 자라는 소나무가 곳곳에서 좀 봐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공룡인가 사자인가?

▼바위 곳곳에 소나무가 박혀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해발 959m 황정산 정상은 나무로 둘러  있어 조망은 없는 좁은 곳이다. 각자 올라온 두 분이 식사하고 있다. 

▼정상에서 잠시 내려오니 영인봉이 나타난다. 만만찮은 구간이고 저곳까지 접근하는 길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범상치 않은 소나무가 누워 있는 바위

▼영인봉을 지나 원통암 들렀다가 아래 미륵불전으로 내려갈 것이다 

▼당겨본 미륵불전. 여자친구가 미륵불전으로 올라왔다가 스님들과 같이 작은 불상을 전시하는 작업을 했다고 하던데 당겨보니 스님 여럿이 보인다.

▼황정산 정상이고 잠시 내려온 바윗길. 정상에서 내려서는 바위 구간이 시작되었다. 

▼짧은 구간이지만 수직으로 오르고 내리고 천천히 진행한다. 로프가 있고 우회길도 보이니 잘 살피며 진행하면 문제는 없어 보인다. 

▼<12:56>영인봉을 마주 보며 바위에 앉아 점심 요기하며 한참을 쉬었다.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는 하늘이다. 

▼땀이 잠시 마르고 있는데 움직이니 바로 땀이 흘러내린다. 영인봉 가는 편안한 길

▼바로 앞 영인봉. 촘촘히 서 있는 바위 사이 어딘가로 올라갈 것이다. 

▼왼쪽 마당바위에 서니 도락산이 세수하고 꺠끗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가하는 소나무

▼영인봉 - 원통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황정리하산길을 따라야 한다. 

▼영인봉 아래 안부에서 영인봉 올라가는 바위 구간이 바로 시작된다. 

▼뒤돌아 본 황정상 정상. 내려오는 길에 바위가 몇개 보이는데 무거진 나무속에는 수 험한 바위가 정말 많았다. 

▼황정산

▼도락산

▼안전장치가 없어 살짝 겁 먹었는데 실제 오르니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우회길도 있는듯한데!

▼지나온 길을 자꾸 찾게되네! 힘들어서 그런가?

▼원통암을 지나 영인봉 찍고 황정산으로 진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험 경고 안내문. 황정상에서 올라올 때 이 안내판이 보이면 다 올라온 것으로 곧 영인봉 정상이다. 

▼<13:33>해발 825m 영인봉 정상. 기둥에 영인봉이 매직펜으로 그려져 있고 철판에 그려진 영인봉을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 

▼영인봉에서 내려와 원통암으로 향한다. 앞 암봉을 넘어가나? 뒤 옅은 구름이 있는 높은 산은 흰봉상. 그 뒤로 도솔봉

▼등산로는 암봉 사면을 돌아가게 나 있다. 

▼<13:47>원통암 분기점. 이제까지 원통암 이정표는 없었는고 황정리하산길만 있었는데 황정리하산길 방향으로는 입산금지 입간판이 보인다. 하늘이 많이 깨끗해지고 있어 여기 분기점 조망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흰봉산 방향

▼원통암 가는 길

▼조망바위

▼황정산

▼올산

▼오른쪽 흰봉산 및 도솔봉이고 왼쪽 구름이 덮힌 소백산 정상

▼<14:14>원통암에 접근하며 꽃 밭이 나온다

▼원통암.

원래는 폐사된 대흥사(大興寺)의 부속암자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1353년(공민왕 2)에 나옹(懶翁)이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93년(숙종 19)에 의명(義明)이 중창하였다. 1787년(정조 11) 이후에는 불교의 탄압으로 인하여 거의 폐허화되었다.이에 1824년(순조 24)대연(大淵)이 중창의 뜻을 세워 춘담(春潭)의 재력과 달선(達善)의 도움을 받아 퇴락한 당우들을 복원하였다. 그 뒤 다시 퇴락한 것을 1949년에 중창하였고, 196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통암은 관세음보살의 육근원통(六根圓通)을 상징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옛날 이 암자 뒤의 절벽 석문(石門)에서는 술이 흘러나왔는데, 욕심 많은 고을 태수가 하늘에서 내리는 술을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뚫자 술이 물로 변하여 버렸으므로 주민들이 원통한 일이라 하여 이 일대를 원통골 이라하고 암자를 원통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법당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법당 내에는 석가여래좌상과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절의 입구를 금포정(錦浦汀) 부도골(浮屠谷)이라 하는데, 이 골짜기 어딘가에 암벽을 파고 사리(舍利)를 모셔둔 사리굴이 있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신보도사(新甫道師)라는 백발노인이 도를 닦아 불법의 이치를 깨쳤다고 전하는 굴이 있는데, 암벽에는 ‘新甫讀書此洞中(신보독서차동중)’이라는 일곱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암벽과 마주보이는 곳에 배석대(拜石臺)가 있는데, 승려들이 이 배석대에 모여서 서로 도를 닦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암벽을 향하여 합장하면서 절하였다고 한다.『조선사찰사료』에 1826년에 동파(東坡)가 지은 「원통암중수기」가 전하고 있어 연혁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 - 민족문화대백과

▼흐르는 물로 먼저 씻고

▼원통보전

▼칠성바위

▼약수터

▼하산길에 만난 산수국

▼미륵불전 앞 계곡에서 원통암 올라가는 들머리. 시주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아예 가지고 올라갈 수 있게 해 두었다. 계곡에서 좀 씻고 미륵불전으로 올라간다. 

▼화재로 소실된 대흥사가 2016년 중창되며 여기에도 미륵불을 세웠다. 여자친구는 여기서 스님들과 불상을 닦아 전시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수고했다고 스님이 준 음료수 두 캔을 내민다.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

▼<15:06>대흥사에 도착하며 오늘 짧은 구간 마무리된다. 같이 작업했던 스님이 우리 곁에까지 와 시간되면 템플스테이 꼭 오라고 좋은 말씀 전해 주고 헤어진다.

법주사 말사로 신라 때 양산 통도사의 건립 당시 창건하였다고 하며 전성기에는 총 202칸의 당우와 불상 10여구, 오백나한상 등이 봉안되어 있었으며, 승려도 1,0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876년 소실된 뒤 오백나한상은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의 승려들이 와서 가져갔다고 한다.당시 금강산에 있던 승려 497명이 8일 만에 이 절에 와서 오백나한상을 1구씩 등에 업고 유점사로 갔으나 남은 3구는 힘이 센 세 사람이 하나씩 더 지고 갔다. 그러나 유점사에 도착한 다음날 그 수를 헤아려보니 3구가 모자랐는데, 함께 업혀온 3구가 승려들의 무성의함을 원망하고 떠났다는 설화가 전한다.부속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원통암(圓通庵)·망월암(望月庵)·굴암(掘庵)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원통암과 청련암만이 남아 있으며, 청련암에는 이 절에서 옮겼다는 탱화가 있다.2001년 사찰을 정비하는 불사를 진행해 2016년 대웅보전 낙성식을 진행했다.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미륵전이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는 단양 시내로 들어와 점심으로 막국수 한 그릇 먹고 시장 구경하다가 마늘닭강정 한 상자 싣고 집으로 향한다.